1918년 말에 쓴 글에서는 테일러 주 의가 “종합과 질서로 이끈다”라고 했고, 명쾌함'을 달성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규정했다. 결국 테일러 주의를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수단으로 해석했다. 1930년 르코르뷔지에는 '빛나는 도시 La Villa Radieuse'를 통해 또 다른 유토피아의 상 俊을 제시해 고, 1933년 동명의 책으로 출간했다. 이때 그는 근대 건축 국제화 의를 이끄는 유럽 건축계의 중요한 인물로 성장해 있었다. '빛나 는 도시'는 기본적으로는 '300만 인을 위한 현대도시'에서 크게 바뀐 것은 없었다. 변한 것이 있다면 만다라 mandala 형상의 중앙집중식 도시 구성 대신 머리, 등뼈, 몸통, 팔로 이루어진 인체 형상의 도시 구성을 제시했다. 도판 2 인을 위한 ..
'붉은 빈'의 공공주택사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층·고밀 아파트로 대변되는 우리의 집합주택 건설 과정에서 역사적 연속성과 문화적 고유성은 파괴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 공기관에서 시행하고 있는 임대주택사업을 빈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말문이 막힌다. 엄청난 양의 노동자 주택을 이른 시일에 건설해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유지하고자 했던 빈의 정책입안자들과 건축가들의 태도는 지금 우리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중산층의 주거환경과 비교해서 결코 질적으로 떨어지지 않는 '노동자들의 낙원'을 건설하려고 했던 그들의 노력과 방법론은 성공이냐 실패냐의 여부를 넘어서는 것이다. 또한 시행한 주체가 심각한 재정난에 봉착했던 패전국의 수도였으며 그 시기가 1920~1930년대였다는 것을 ..
이런 부정적인 평가는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탈리아의 대표적 좌파 이론가인 레오 나라도 베네 볼로 LeonardoBenevolo는 빈의 공공주택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을 표명하긴 했지만 주로 당시에 썼던 자금 조달 방법이나 다양한 공공시설 등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역시 건축적 내용에 대해서는 냉담했는데 건물 자체는 '바그너적인 상징주의'를 개념으로 했으므로 주목할 만하지만, 형태는 원리가 없고 표피적이고 '현실 도피적 성향의 절충적인 건축에 불과하다고 비 했다. 15 근대 건축 국제회의는 추상적 기계미 학과 생산적 기능주의를 표방했는데, 그들의 논리와 어긋나는 건축적 조류를 이단시했던 유럽과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빈의 공공주택을 바라보는 시각에 그대로 반영됐다. 1 빈의 공공주택에 대한 평가는 1..
거대한 도시적 규모와 개별 주택의 섬세함, 장중한 통일성과 역동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구현했다.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명품 집합주택, 카를 바이트 호프 빈에서 카를 마르크스 호프에 버금가는 기마인데 배우를 하나만 꼽는다면 당연히 '카를 바이트 호프 Karl Seite Hof, 1926-193/'이다. 붉은 빈의 두 번째 시장인 카를 바이트 Karl Spitz의 이름을 딴 이 건물은 1,700호의 주택을 수용하며 '도시 속의 도시'라는 개념을 실현하고 있다. 빈의 제21구인 풀 로리츠도르프 Floridsdor는 원래 도나우강 북부의 공업지대였는데 사회주의 정부에서 이곳을 새로운 주거지로 바꾸었다. 정부에서는 작은 규모의 집합주택을 여러 채 건설하려던 원래 계획을 바꿔 하나의 거대한 블록을 건설함으로써 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