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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말에 쓴 글에서는 테일러 주 의가 “종합과 질서로 이끈다”라고 했고, 명쾌함'을 달성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규정했다. 결국 테일러 주의를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수단으로 해석했다. 1930년 르코르뷔지에는 '빛나는 도시 La Villa Radieuse'를 통해 또 다른 유토피아의 상 俊을 제시해 고, 1933년 동명의 책으로 출간했다. 이때 그는 근대 건축 국제화 의를 이끄는 유럽 건축계의 중요한 인물로 성장해 있었다. '빛나 는 도시'는 기본적으로는 '300만 인을 위한 현대도시'에서 크게 바뀐 것은 없었다. 변한 것이 있다면 만다라 mandala 형상의 중앙집중식 도시 구성 대신 머리, 등뼈, 몸통, 팔로 이루어진 인체 형상의 도시 구성을 제시했다. 도판 2 인을 위한 현대도시'에서 중심부에 있던 고층의 업무시설은 인체의 머리 부분으로 이동했고 몸통 부분에는 대규모 집합주택인 요철형의 선형 주택'이 배치되었다. 르코르뷔지에는 '빛나는 도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도시의 목표는) 기계화 시대에 사는 인간에게 본질적인 즐거움을 부여하는 것”인데, 그것은 “주택에는 태양이 가득하고, 커다란 창을 통해서 하늘을 바라보며, 주택에서 수풀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도시를 디자인하는 재료는 태양, 하늘, 나무, 철, 시멘트인데, 이 순서대로 중요성이 부여되어야 한다.” 르코르뷔지에가 두 도시 모델을 통해 특별히 강조한 것은 '조화'의 이념이었다. 개인, 가족, 그리고 국가의 공공적 질서가 조화를 이루고, 건물과 녹지가 조화를 이루며, 도시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 즉 총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세계를 구현하려 한 것이다. 르코르뷔지에는 이런 조화를 달성하는 가장 큰 수단을 녹지로 설정했다. 그의 도시에는 잔디밭, 정원, 테니스 코트, 가로수길 boulevard, 공원 등이 곳곳에 설치되었고, 그 면적은 도시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광 대했다. 그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 미술 공부를 할 때부터 나무와 수풀을 도덕적 질서의 상징으로 인식했다고 한다. 녹지는 그가 혐오했던 도시의 슬럼을 치유하는 해독제였고, 산업화가 다 져온 도시의 매연을 정화하는 수단이었으며, 파라다이스를 형성하는 원천이었다. 이렇게 녹지를 강조한 것은 도시와 전원의 조화를 추구한 여러 선각자와 생각을 공유한 결과였다. 이런 녹지 존중의 이념을 바탕으로 르코르뷔지에는 기하학적 공간체계가 자연과 공존하는 도시를 현대적 도시의 상으로 제시했다. 르코르뷔지에의 집합주택 모델 르코르뷔지에가 생각한 이상적인 주거환경은 고층, 소밀의 집합주택이었다. 그는 효율적인 경영과 기계화된 생산방식에 의해 노동에서 해방된 현대인은 레저와 스포츠를 즐기면서 여유로운 생활을 누릴 것으로 보았다. 이를 위해서는 주택을 효율적으로 집합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생겨나는 여유 공간 내에 다양한 시설을 제공해야 했다. 미래에는 개인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될 것이므로 개인 간의 교류를 증진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도 다양하게 제공되어야 했다. 동시에 집안일을 하인들에게 맡기던 가사 형태가 사라질 것이므로 주택 내부의 가사 공간은 최소화하는 대신 시설의 공동화를 통해서 주부의 가사노동을 덜어 주어야 했다. 이러한 요구에 합당한 주거 형식은 많은 공동시설이 있고 넓은 외부공간으로 둘러싸인 대규모 집합주택이었다. 건설과 유지 관리의 경제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고 도시적인 성격을 유지하는 데도 적합했던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시설의 공동화와 함께 단위주택의 독립성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가 1922년에 처음으로 제시한 집합주택 모델의 단위주택은 내부에 취사, 운동, 취미, 독서를 위한 공간을 모두 수용해 일반 단독주택과 별 차이가 없었다. 또한 주택에는 테라스 형태의 넓은 정원까지 있었는데, 단독주택을 상징하는 개인 정원이 다층의 집 합주 책에 마련된 것은 특이했다. 도판 3 그는 가족생활의 독 3. 르코르뷔지에의 이니블 빌라의 입면 스케치. 델로 설정했다. 하지만 급진적 사회주의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개인은 방 房만을 소유하 고 모든 시설은 공유하는 '호텔식 공동주택'을 지지했던 사회주의자들은 르코르뷔지에의 모델을 소극적 공동화의 개념이라면서 비판했다. 그러나 공간적 기능적으로 완결된 단위 주택을 대규모로 모으는 집합주택의 개념은 르코르뷔지에뿐만 아니라 근대 건축 국제회의를 주도한 건 축가들이 공통으로 가졌던 생각이었다. 어쨌든 그것이 집합주택의 기본형으로 정착되었고, 오늘날까지 지속하고 있다. 그는 1952년 마르세유에 '위기네 다비타시옹'을 완성하기 전까지 집합주택 모델을 실제로 구현할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다. 집합주택에 관한 한 '운이 없었다'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무명 시절이던 1920년대에 제시한 집합주택 모델들은 형식과 이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르코르뷔지에가 집합주택 모델을 구상한 것은 대략 1920년대 초반이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1918년에서 1922년까지의 기간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시기였다. 르코르뷔지에를 연구한 사람들은 이오 년 정도의 기간을 모색의 시기' 또는 '발명의 시기'라고 부른다. 이때 그는 개인과 사회, 사적 세계와 공적 세계, 그리고 개인의 다양성과 사회의 통일성이라는 이원적인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모색을 했으며, 그 결과를 건축적 모델로 구체화하려고 했다. 바로 1920~1930년대에 제시한 도시와 집합주택 모델들이었다. 르 코르뷔지에가 1920~1930년대에 제시한 집합주택 모델은 두 가지로, 모두 도시 모델과 함께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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