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 - 시트로 주택 laisonCitrohan
하나는 이뫼블 빌라 Immeuble-villas'로 중정을 둘러싸는 블록형 집합주택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아래당 A regents' 즉 요철형의 선형 주택으로서 주동이 외부공간을 지그재그 형사로 둘러싸는 거대한 규모의 집합주택이었다. 도판 4 300만 인을 위한 현대도시'에서는 두 모델이 모두 제시됐지만, 빛나는 도시'에서는 선형 주택만 제시되었다. 이뫼블 빌라'는 스무 개 기초 유럽 각국에서 성행하던 블록형 집합주택과 유사하지만 르코르뷔지에는 그것과 상관없이 이 모델을 독자적으로 '발명'했다. 또한 선형 주택 ‘아래당'은 형상이 베르사유궁과 흡사하며, 푸리에가 십구 세기에 제시했던 이상적 커뮤니티 VR '팔랑스 테를'와도 유사점이 많다. 두 형식의 집합주택 모두 외부공간에는 테니스 코트, 수영장, 건강달리기 코스, 카페, 집회실 등 다양한 공공시설이 제공되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집합주택 모델을 구상하기 전에 우선 단독주택 모델부터 구체화했다. 도미노 주택 Maison Domino 은 기초적인 모습을 지녔지만 시트로 주택 laisonCitrohan 은 매우 구 체적인 모델이었기에 르코르뷔지에가 건축가로서 만든 첫 번째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트로엥'이라는 이름은 프랑스 4. 슈퍼블록의 개념과 함께 제시된 르코르뷔지에의 새로운 집합주택 모델 '아래당'의 공간구성도, 랑스의 자동차 회사 '시트로엥 Ciproën'에서 빌려 왔는데 '자동 차와 같은 주택'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주택도 자동차처럼 대량생산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제시 된 '살기 위한 기계'의 구체적인 모습이었다. 단순한 상 자 모양의 이 주택은 옥상지붕, 상하층으로 개방된 거실, 그리고 넓은 전면창을 가지고 있었다. 도판 5 1920년에 처 음 제시된 이후 여러 차례 개선을 거쳐 마지막 모델에서 는 필로티로 들어 올려지고 주차공간이 부여되었다. '이뫼블 빌라'는 시트로앙 주택을 집합한 것이다. 도판 3, 7 시트로앙 주택을 중정 주변으로 중첩해서 배열한 후 편 복도로 연결했다. 건물의 최상층에는 레스토랑, 집회실 등 공공시설을 배치했다. 그는 이 모델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독립된 정원이 있는 120세 대의 단위주택을 집합한 5층 규모의 건물로서, 공공서비스는 호텔 수준으로 제공될 것이므로 하인 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 그가 언급한 '하인 문제'는 이후 규명하기로 하고, 우선 이 집합 주택 모델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르 코르뷔지에가 최초로 제시한 집합적 생활의 상'은 당시 그가 가졌던 개인과 집단의 관계에 관한 이념의 결과물이다. 흥미로운 점은 르 코르뷔지에가 이 집합주택 모델을 수도원 건물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십 세를 전후한 젊은 시절에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등 지중해 주변 국가를 두루 돌아다녔는 데, 그때 방문한 이탈리아 피렌체 부근 에마Ema의 수도원으로부터 이 집합주택의 모델을 유추 했다는 것이다.그는 수도원에서 받은 인상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내가 이러한 연구를 하게 된 최초의 계기는 1907년 피렌체 근방 에마에 있는 카르투지 오 Carthusio 수도회의 수도원을 방문한 것이다. 나는 토스카나 Toscana의 조화로운 시골 언덕의 정상에 있는 '현대도시'를 보았다. 수사들의 단위 공간이 연속해서 이어진 모습이 우아한 풍경 속의 실루엣을 만들고 있었다. 도판 6 각 단위공간은 멀리 벌판으로 시야가 트이면서 저층부에서는 작고 폐쇄된 정원을 향해 열려 있었다. 나는 그 처럼 행복한 삶의 배열을 본 적이 없다. 단위공간의 후면으로는 출입문과 넓게 개방된 창문이 아케이드 형식의 복도로 이어지는데, 그곳을 통해 기도, 교제, 식사, 의식을 위한 공동의 시설로 연결되었다.”10 여 기서 단위공간 즉 '셀el은 단순한 방이 아니다. 카 르투지오 수도회에서 일반화된 수도사들의 개인공 간으로서, 2층 규모에, 침실, 작업실, 기도실, 그리고 르 코르뷔지에는 다시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그 빛나는 광경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 겼다. 1910년 아테네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다시 그 수도원에 들렀다. 11 그는 수도원의 공간구성을 집합주택으로 바꾼 과정을 이렇게 술회했다. “1922년 어느 날 파 트너인 피에르 장드레 Pierre Jeanneret에게 그것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우리는 즉각 레스토랑의 메뉴 판 뒤에다가 블록형 집합주택'의 시안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아이디어가 도출되 었다. 좀 더 상세한 계획은 몇 달 뒤 살롱 도톤Salon d'Automne 전시회에 우리가 제출한 '300만 인을 위한 현대도시'라는 제목의 도시설계안에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