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 - 카를 엔의 절충주의적 기법
아마도 여러 가지 대안이 모색되었을 것으로 유추되지만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카를 엔이 계획을 맡은 것은 1926년이었다. 그의 계획은 단순 명쾌했고, 초점이 분명했으며, 위계적으로도 명확했다. 그는 건물을 여러 덩어리로 나누는 대신 하나의 연속된 구조로 만들었고, 건물의 하부를 곳곳에서 관통시켜 보행자와 자동차가 통과하게 했다. 단지 중앙의 거대한 광장에 면해서는 상징적인 중심 건물을, 그리고 그 좌우에는 중정을 둘러싸는 크고 작은 건물들을 연속시켰다. 도판 18 계획은 소소한 수정을 거친 후에 그대로 시행되었다. 완성된 건물은 작은 도시 규모로, 15만 제곱미터 대지에 1,400호의 주택과 5,000명의 인구를 수용한다. 중앙 광장의 면적은 1만 제곱미터가 넘고, 전면 가로인 하일리겐슈타트 슈트라세 Heligenstädterstrasse에 면 하는 건물의 길이는 1.2킬로미터에 달한다. 도판 19 이곳에는 공동세탁장 2곳, 공중목욕탕 2곳, 병 원, 의료보험사무소, 우체국, 도서관, 유스호스텔, 약국, 레스토랑과 수십 개의 상점이 들어섰 다. 단일 건물로는 빈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1927년 6월 카를 엔의 계획안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 규모에 놀라면서도 '새로운 유형'을 반겼다. 시의 공무원들은 “단지와 전원도시의 성격이 고층건물과 함께 어우러 진 계획”이라고 규정했다.11 당시 보수적인 한 시의원은 엔의 계획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 다. “이 프로젝트에서 중정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 졌다. 우리는 1만 내지 1만 5,000제곱미터 크기의 중정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중정이 아니다. 이런 크기의 공간을 더 이상 중정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 새로운 유형이 창조되었다. '중정이 없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공 간은 중정이라기보다는 여러 길이 서로 통하는 공공장소 라고 하는 편이 적절하겠다. (...) 우리가 지금까지 건설한 것들과 비교하면 완전히 새롭다. (...) 개방된 건물과 폐쇄 된 건물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중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12 도판 20 카를 마르크스 호프 중앙의 상징적 건물은 한쪽은 광장을, 다른 한쪽은 철도 역사를 면한다. 광장에서 전면 가로를 건너면 도시에서 가장 큰 스타디움으로 이어진다. 이곳은 단지의 광장이 라기보다는 도시의 광장이기 때문에 노동자 대회 등 각종 행사가 열리는 장소로 사용된다. 광 장에 면하는 6개의 아치문들은 철도 역사와 광장 그리고 스타디움을 연계하는 통로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거대한 한 덩어리로 인지되는 카를 마르크스 호프는 사실 5개의 관통 도로에 의해 곳곳에서 분절된다. 관통 도로의 양쪽에는 유치원, 병원, 도서관 등 공공시설을 배치했고, 주요 가로와 만나는 교차점 주변에는 카페, 상점 등 상업시설을 배치했다. 도판 2기 긴 건물에 일정한 간 격으로 결절점 結節點을 만들고 그곳에 주민들과 외부인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시설을 배열한 것 이다. 관통 도로는 거대한 반원 半圓 아치 밑을 통하는데, 아치는 공공시설이 주변에 모여 있음을 알리는 일종의 표지판이라고 할 수 있다. 카를 엔은 이곳에서 절충주의적 계획기법을 유감없이 적용했다.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 등장 한 새로운 건축'과는 대조적인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 건 물은 블록형 구성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거대 아치와 돌출 발 코니를 다양하게 사용했으며, 탑과 인물상 등 조각적인 장식 요소들을 곳곳에 가미했다. 도판 22 또한 벽체에는 붉은색, 황토 색 등 색채를 과감하게 사용해 건물이 지닌 강력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이런 절충적인 요소들과 함께 건물 곳곳에는 근대 건축의 형태요소 또한 적절히 사용했다. 예를 들면 전면 가로 인 하일리겐슈타터슈트라세의 남쪽 끝에 둥글게 유리로 마감 한 파빌리온으로, 그 형태는 아우트가 로테르담의 훅 판 홀란 상징한다. 오스트리아 조각가 프란츠 리들이 제작한 세라믹 트 집합주택에서 사용한 바 있다. 제3장 도판 16 카를 엔이 아우트 의 작업을 참고로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유리를 과감하게 사용한 이 형태는 근대건축 미학의 정수로 평가된다. 카를 엔은 절충주의적 기법을 오토 바그너의 빈 예술아카데미 상급반에서 익혔다. 바그너는 학생들에게 독창적인 방법으로 매우 실질적이면서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형태를 찾을 것을 요구했다. 그가 강조한 '도시건축'은 기존의 도시조직과 잘 어우러지면서도 새로운 사회의 성 격과 경제 상황을 적절하게 고려하는 건축이었다. 또한 학생들에게 규모가 큰 '상상적’ 구성의 건축계획을 과제로 내면서 거대 아치, 탑, 연속된 파빌리온, 포티코, 아케이드 등으로 구성되는 '환상적인 모습을 기대했다. 카를 엔은 바그너의 가르침을 카를 마르크스 호프에서 충실하게 실현했다.